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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_시국

[펌:경향신문] 교회 다니는 게 창피한 세상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사하면서 짐 정리를 하는데, 아버지 물건을 간추리고 정리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웬 사진을 박박 찢는 거였다.

무슨 사진을 그렇게 열심히 찢으시나 봤더니, 아버지가 옛날에 목회하시던 선교회에 당시 현대건설에 다니던 이명박 대통령이 간증을 와서 다같이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어머니가 겸연쩍게 “너 기분 잡치지 말라고…” 그러시기에 웃다가 생각해보니, 그 사진 이후 한국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참 많은 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평생 목회만 하다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친가, 외가 가족 모두 아무도 빼먹지 않고 주일 예배 꼬박꼬박 지키는 집안이라 교회에 익숙하다. 그런데 근래들어 이렇게까지 기독교인이 욕먹는 분위기는 예전에 본 적이 없다. 

옛날에는 “쟤 교회 다닌대” 그런 말을 할 때, 사람들 생각은 그럼 착한 애겠구나, 내지는 좀 재미없고 심심한 애겠구나, 뭐 그런 거였다. 요즘에는 “누구누구씨 교회 다닌대”, 할 때 아무도 그를 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재미없고 심심할 거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땅값도 잘 알 것 같고, 세금 피하는 법에도 훤할 것 같고, 시세차익 같은 것도 쫙 꿸 것 같고 막 그렇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누구누구씨가 평소에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면 사람들은 실망도 한다. 누구누구씨 그렇게 안 봤는데 교회를 다닌다고? 확실히 기독교인을 보는 시선이 좀 묘해져서, 이 분위기에서 ‘저 교회 다녀요’ 하고 말하는 건 커밍아웃까지는 아니라도 좀 민망해진 감이 있다.

그래서 “저 교회 다녀요”, 다음에 붙이는 말이 자꾸 늘어난다. 저 교회 다니지만 저희 교회 큰 교회 아니구요, 저희 목사님은 세습 목회 반대하시구요,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그런 선교는 안 좋아하구요, 저는 리처드 도킨스도 읽는다니까요, 이렇게 주섬주섬 변명을 하는 내용인즉슨, 나는 교회를 다니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 ‘개독’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 친척들은 모여서 장로 대통령이 되라고 참 열심히 기도했다. 그런데 장로 대통령이 되니까 희한하게도 교회 다니는 게 ‘쪽팔린’ 세상이 왔다. 

이게 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꼴이 될까봐, 혹시 내가 일방적으로 우기는 건 아닌지 열심히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약삭빠를 것 같고, 잘 우길 것 같고, 꼼수 잘 쓸 것 같은 사람처럼 이미지를 일신하고 만 것은 장로 대통령 때문이 맞는 것 같다. 여전히 오세훈을 좋아하는 우리 친척들 사이에서도 곽선희 목사님(소망교회 창립자)은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그러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떤 사람들 눈에는 참 시시한 목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 이 세상에 욕심 낼 것 없다, 좋은 차, 좋은 옷, 이런 것 욕심낼 것 없다고 가르쳤다. 어차피 천국에 가면 얼마든지 좋은 것이 많으니 살아서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기독교인이 보통사람과 가장 다른 점은 죽음 이후에도 생이 계속된다는 것을 믿고, 그리하여 구원받아 영원한 삶을 믿는다는 것일 텐데, 이명박 장로님을 보면 좀 민망하다. 내곡동 게이트도 그렇고 돈에 대한 순수한 ‘욕정’의 소유자라고 이렇게 놀림을 당하는 걸 보면, 누가 죽고 난 후에 삶이 있다고 하겠는가. 

이래서야 누가 기독교인이 사후의 삶을 믿는다고 하겠는가. 그럼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지같이 살아야 되냐, 예수 믿고 축복 받아서 물질적으로 잘 풀리는 것도 은혜다, 하고 버럭들 하시겠지만 평생 교회 다녀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그린벨트 언제 풀릴지, 귀신같이 알 사람 취급보다는 좀 재미없고 심심한 사람 취급이 백배 나은 것 같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neopsych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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