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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_시국

[펌] [인터뷰]시사프로 진행자 ‘이대통령을 쏘다’

[인터뷰]시사프로 진행자 ‘이대통령을 쏘다’

2009 07/21   위클리경향 834호

CBS 김용민 교수 ‘오프닝 멘트’ 화제…
“시사평론가라면 할 말은 해야”



용자(勇者) 탄생. 누리꾼은 그렇게 말했다. 한 라디오방송 오프닝멘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오프닝멘트는 “갑자기 이대통령이 생각 난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 대통령은 교회장로이고, 대표적인 친미주의자다. 그는 또 친일파와 손을 잡았고, 정적을 정치적으로 타살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또 야당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 정치는 날마다 꼬였고, 그의 주변엔 아첨꾼들로 들끓었다. 반정부 시위엔 경찰을 앞세워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러다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오프닝 멘트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여기서 말하는 이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현재까지는….”

이 멘트는 지난 5월31일, CBS라디오 시사자키에서 나왔다. 주말 진행자 김용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의 말이다. 누리꾼은 “이 분 과연 무사할지…”라고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목숨을 건 방송진행’이라는 말도 나왔다. 시국에 대한 걱정이다. 김용민 교수에게 물어봤다. 정말 목숨을 걸었느냐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별 지장은 없습니다. 솔직히 비장한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보수단체들은 그럽니다. 대통령을 마음대로 비난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마음대로 비난한 뒤 당할 여지가 문제겠죠. 뒤탈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놓고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이 정도 수위의 비판은 일상적이지 않았나요?”

지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5월 24일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오프닝 멘트와 이 멘트가 ‘화제’를 모으자 CBS 쪽에서 오프닝멘트를 빼고 진행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6월8일 이후 김 교수가 진행한 네 차례의 시사자키는 한달 째 오프닝멘트 없이 바로 그날 방송 내용으로 넘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방송은 사적인 진행이 아니기 때문에 편성권자의 요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게 물었다.

이전 오프닝 멘트도 편성권자와 상의해 나온 건가요.
“원고를 썼고 프로듀서가 감수를 했습니다. 보통 방송 전에 원고를 드리죠. 제작자 허락없는 방송은 당연히 없는 것 아닌가요. 사실 오프닝 멘트를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거 ‘신경민 앵커 사태 2탄’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고민이 드니까 ‘할 말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되고 있는 현실에, 여기에서 침묵한다면 시사평론가라는 제 직함의 의미는 사라지게 됩니다.”

시사자키 게시판을 보니 ‘김용민을 잘라야 한다’, ‘북한 방송 보는 것 같다’는 비난 메시지도 많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제 목소리가 나갑니다. 남의 주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건 없습니다. 어떤 형태의 반론이든 반론은 존중하고 받아들여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의미가 없습니다. 게시판 글은 저도 읽었습니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든가, 종교인이 아니다(그는 지금도 집 근처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그냥 들어줄 수 있어요. 나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지나가는데 한 꼬맹이가 ‘저기 슈퍼뚱땡이가 지나간다’고 하데요. 마음 상할 일은 아닙니다.”
그는 교수라는 직책보다도 ‘시사평론가 김용민’이라는 직함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말이 시사평론이지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신문이나 TV뉴스는 매일 꼬박꼬박 꿰고 있어야 하는 일 아닌가.

시사평론을 하려면 많은 시간을 정보습득하는 데 투자해야 할텐데요.
“즐기는 일이니까요. 신문보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얼마 전에 휴가를 갔는데 신문을 못 보니 미치겠던데요. 지방에 가니 경향·한겨레가 없습니다. 결국 시내로 나가 지국을 물어봤는데 조·중·동 밖에 없어요. 못 보니 숨을 못 쉬겠습디다.”
그의 성장과정은 남달랐다. 신문을 많이 읽었던 아버지를 따라 그도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 처음에는 TV 프로그램, 스포츠면을 보다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치면을 읽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정당계보도’까지 그려주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 결과는? 왕따였다. ‘뭐 저런 괴상한 취미를 지닌 애도 다 있어’하는.

시사평론일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이전에 종교방송 PD일을 하다가 잘렸습니다. 두 군데서 잘리고 나니까 취업이 안되더군요. 다른데서 최종면접까지 갔는데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봐 경영의 합리화와 건강성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답했지요. 어 그래~하고 바로 아웃되었죠. 놀고 있었는데 당시 SBS 편성부장하시던 분이 1주일에 한번씩 와서 뉴스브리핑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게 좋은 평가를 받아서 KBS, 교통방송, CBS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심지어 내가 기독교 신자인데 불교방송까지….”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십니까.
“아침에 4시쯤 일어나서 8대 종합일간지를 다 살펴봅니다. 물론 요령은 있습니다. 뉴스가 될 만한 면을 신속하게 봅니다. 주로 한 신문이 단독보도한 것이나 특종·기획보도를 유심히 보죠. 큰 사안인데 신문마다 논조 차이를 보이는 사건기사도 유심히 봅니다. 그리고 연합뉴스에 올라오는 새벽뉴스도 긴급 현안 등을 참고하고…. 집이 경기도 용인인데 새벽 5시 전에 출발해야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지요. 취침은 저녁 10시쯤 합니다. 워낙 집안 자체가 아침형 인간 체질이라.”

물론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시사프로그램의 무게를 빼기 위해’ 정치인 성대묘사도 시도했다. 요즘에는 안 하지만 이회창, 이명박, 노무현, 박근혜 등이 그가 성대묘사를 해본 정치인명단이다. 박근혜를 어떻게 했는지 살짝 궁금해지려는 차에 그는 덧붙였다. “아마 김근태 묘사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에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김근태 톤이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를 ‘생계형 시사평론가’라고 불렀다. 그의 수입 대부분은 방송출연료나 기고에서 나온다. 시사프로그램이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시장에서 떡 파는 아줌마’도 정치인에 대해 품평할 수 있어야 하고, 정책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뉴스·사회담론의 연성화가 그가 추구하는 시사평론의 목적이다.

반면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정치과잉이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말도 안 돼요. 덮어놓고 ‘정치는 다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도 저도 다 나쁘다, 그러면 뭐에요? 결국 기득권을 지닌 기존세력에게 한 표를 던지는 흐름과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방송할 때 저는 정치인들이 날마다 싸우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최소한 왜 싸우는지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정치과잉을 넘어 정치의 생활화가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정당에 많이 가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약국 김씨 아저씨도 출마하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도 내가 나가 세상을 바꿔보겠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문정치가, 정치자영업자라는 직업범주가 있다면 거기서 정치과잉이 이야기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시사자키 오프닝 멘트 후 20대를 향한 그의 독설이 또다시 화제가 됐다.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라는 제목이다. 요컨대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보기 힘들었고, 어학·학점 등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요즘 20대들은 뭐를 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충남대신문의 요청으로 기고한 그 글은, 대학신문에 실린 기고문임에도 불구하고 20~30대 층이 몰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숱한 논쟁을 낳았다. 그 자신이 20대인 노정태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은 7월 6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한예종 사태에서도, 그리고 서강대의 쇼핑몰 입점 반대 시위에서도 20대는 다양하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김용민씨는 93학번이다. 최근 실크로드 세대론을 주장하는 변희재씨와 같은 학번이다. 말하자면 386이 아니다.

노정태씨 뿐 아니라 많은 20대가 반론을 폈습니다. 어떻게 답하실 생각입니까.
“비판이든 격앙된 반감의 표시이든, 감정을 드러낸 20대는 그래도 ‘희망있는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쓸 무렵 서울광장이 털렸습니다. 감정을 지울 수 없는 글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반감이 나온다는 거는 고무적인 일입니다. 내 입장은 이겁니다. ‘기꺼이 20대를 위한 샌드백이 되어주마. 다만 치고 빠지진 말아라. 나뿐 아니라 더 큰 상대를 잡아 하면 더 좋겠다.’”

엄밀히 말한다면 김 교수는 포스트386세대인데요.
“나를 386으로 오해하고 그렇다면 ‘너네들은 뭐했는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20대 너희들이 비교할 대상은 386이 아니라 386의 20대다. 너희들이 지금 386세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운신의 폭이 좁아들더라도 지금의 386보다 더 열정적이고 패기 있고 역동적으로 시대를 고민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면 기꺼이 수용하겠다.’ 20대에 ‘투지’가 없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만약 20대의 투지가 살아난다면 제가 기꺼이 ‘병신인증’을 하겠습니다.”

김 교수의 20대는 어땠나요.
“사실 20대 시절 나는 화염병을 던지거나 붙잡혀 간 적이 없습니다. 20대 10년 내내 리포터로 시작해서 방송국에서 살았습니다. 직장에 들어가 노조가입하고, 늦은 운동권이 되었어요. 한국교회가 너무 썩고 타락했고, 복음의 본질과 어긋났다고 주장했는데 잘렸습니다. 대형교회 목사 문제 이야기하다 또 잘렸고. 20대 때의 나는 돌이켜보면 보수청년이었죠. 그런데 노조 만들어 잘리니까 사람이 바뀝디다. 제가 그 부분은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가 있고 마누라가 있으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20대 너네는 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너희들이 나보다 더 현실타협적으로 나간다면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요.”

그는 유명블로거 MP4/14와 ‘블로거, 명박을 쏘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고소영 강부자 S라인’이라는 말을 최초로 거론한 책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인연도 궁금하다. “나는 몰랐는데, 이전에 천리안 청와대란에서 그 분과 제가 티격태격 싸운 적 있다는 거에요. 나는 김영삼을 옹호하고, 그 사람은 비판하는 입장이었는데, 당시 저보고 ‘너, 정말 한심한 대학생이다’라고 그 사람이 말했다고 하더군요. 허허허” 왠지 개그맨 김구라씨와 말투가 비슷하다. 아닌게 아니라 김구라씨가 출연한 인터넷프로그램의 PD를 맡으면서 그 인연으로 두 저자가 책까지 내게 되었다. 연관된 마지막 질문. 그는 현 정부의 ‘운명’을 어떻게 내다볼까. “이 대통령의 결말, 다 저 책에 담겨있습니다. 이 대통령 역시 중간에 그만 둘 사람은 아니고…. 과연 국민이 견뎌 낼 수 있을까요. 본인이 바뀌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습니다. 국정변화에 대한 대통령 결단이 필요합니다. 떡볶이도 먹고 재산도 기부하고…근원적으로 베푸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 효과가 얼마나 갈까요. 위에서 돈뿌리지 말고 내려와서 국민과 만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제 생각입니다.”